시적 상상력과 현대사회 (주름과 기억 요약) 2차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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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시간의 폐허와 전율의 미학 - 홍신선의 시세계
홍신선의 시는 집요하게 폐허의 풍경을 그려낸다. 농촌의 빈궁 체험에서 유래했던 거의 현실에 대한 부정의식은 1970-1980년대의 사회적 모순과 억압에 대한 지식인의 환멸을 경유하여, 이제 세기말과 세기초의 경계에 위치한 폐허의 시대의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홍신선의 현실에 대한 부정의식은 저항의 차원으로 급진화되지 않고 내면 공간 속으로 역진하여 환멸의 자의식으로 전이된다. 이 환멸의 자의식은 현실의 모순과 억압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그 굳건한 폐허의 의식은 다시 현실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하나의 비극적 세계인식으로 자리잡는다. 그리하여 홍신선의 시는 일관되게 현실의 어둠을 부정과 환멸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것을 폐허의 풍경으로 묘사하게 된다. 그러므로 홍신선 시의 핵심적 기법인 ‘풍경의 묘사’에 개입되어 있는 현실과 내면의식의 역학 관계를 규명하는 것은 그 시세계를 이해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3부 ‘세기말을 오르다가’에 수록된 시들을 관류하는 것은 세기말로 진입하는 문명의 현실을 부정의식으로 바라보며 그 허무의 빈틈을 열어 내면을 비우는 작업이다. 여기서 “마음 뒤집힌 전복?”의 의문형 문장은 어떤 시인의 태도를 내포하고 있을까? “이 정도에 목숙 망해?/인류 망해?”와 함께 읽는다면, 그것은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이 아이러니의 정신과 결합하여 나타나는 일종의 풍자의 태도임을 알 수 있다. 또 하나 이 문장은 우리 시대의 삶이 상실하고 있는 것이 “마음”임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므로 홍신선의 환멸과 풍자의 정신은 한편으로 뒤집힌 마음을 바로잡는 대안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그것은 이 시의 후반부에서 “이 따위 할아버지와 일가는 알지도 못하는/숱한 나는 누구인가?/너는?”에서 역으로 드러나듯, 가족이 중심이 된 공동체적 삶을 긍정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시인이 주시하는 원인은 바로 “새고 있는 시간” 혹은 “균열진 틈”이다. “갈라지고 붕괴”되는 세계는 이 시간의 누수와 풍화작용에 의해 생겨난다. 시인은 욕망이 무한 증식하는 천민자본주의의 구조적 근거를 근원적인 시간의식으로부터 얻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이 ‘균열’과 ‘허무’를 그 자체로 인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 몸의 내부로 끌어들여 균열을 극복하는 균열, 허무를 극복하는 허무를 생성해낸다. 세기말의 전환기에 처한 시인이 시간에 대한 사유를 통해 페허의 현실과 허무를 내면의 빈 공간 속으로 끌어들여 역전시키는 이러한 내성의 상상력은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선명히 표현되고 있다. 욕망을 낳는 집착을 버리고 생각을 비움으로써 얻어지는 “편안한 망각”은, 내면의 텅 빈 공간 속으로 현실의 폐허를 받아들여 그 어둠을 새로운 빛으로 전이시키는 방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종말을 다시 아름다운 세상의 개벽으로 인식하는 이러한 역전의 시정신은 “몸 열어 아프게 받아들이는/늙은 작부인/지상/오늘은 이 폐허가 화엄이구나”(「마음경(經)15」)에서도 표현되는데, 이러한 시의식을 통해 홍신선은 ‘봄’의 계절이 지닌 재생의 리듬에 한 발을 얹어놓게 되는 듯하다. 따라서 이 시는 중년의 시인이 경험하는 새로운 열정과 퇴락한 현실의 폐허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을 형성한다. 새로운 생의 열정과 폐허의식 사이에서 길항하는 팽팽한 긴장은 다음과 같은 시에서 “살 타는 매운내”로 “진동”한다. 잉걸불을 박고 견디며 살 타는 매운내를 풍기고 있는 동백나무는 20세기가 남긴 상처와 시간의 풍화작용을 온몸으로 견디며 생명의 불꽃을 태우고 있는 시인의 모습이다. 이 잉걸불로 타는 몸은 홍신선 시의 팽팽한 긴장을 가능케 한 동인인데, 그것은 과거로의 회귀와 과거와의 결별 사이에서 요동치는 몸서리를 내포하고 있다. “흉가처럼”이 말해주듯, 시인에게 있어 과거는 “동학사 오르는 초봄의 추운 길”과 “취기마저 깨기를 기다리던/국립묘지 앞 텅 빈 주차장”과 “죽음 위에 걸터앉아 애를 낳는/협착한 자궁에서 난산으로 늑장부리는 흐린 희망들”로 대변되는 추위와 취기와 죽음의 이미지로 중첩된 폐허의 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시간들이 원천봉쇄한” “현재”를 떠나 과거로 돌아가려 한다. 그러므로 1)에 나타난 과거로의 회귀는 단순한 과거 지향이 아니라 과거가 지닌 열정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2)에서 시인은 한국의 파행적 현대사가 낳은 정치적 사건으로 인해 남루와 퇴락과 죽음을 겪었던 과거와의 결별을 희망한다. “황홀치 않은 시적들을 메고/날아”가는 “떠돌이 새들”에게 “잊어버려라”라고 거듭 외치고 있는 화자의 목소리는 바로 자신을 향하고 있다.
본문내용 빈궁 체험에서 유래했던 거의 현실에 대한 부정의식은 1970-1980년대의 사회적 모순과 억압에 대한 지식인의 환멸을 경유하여, 이제 세기말과 세기초의 경계에 위치한 폐허의 시대의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홍신선의 현실에 대한 부정의식은 저항의 차원으로 급진화되지 않고 내면 공간 속으로 역진하여 환멸의 자의식으로 전이된다. 이 환멸의 자의식은 현실의 모순과 억압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그 굳건한 폐허의 의식은 다시 현실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하나의 비극적 세계인식으로 자리잡는다. 그리하여 홍신선의 시는 일관되게 현실의 어둠을 부정과 환멸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것을 폐허의 풍경으로 묘사하게 된다. 그러므로 홍신선 시의 핵심적 기법인 ‘풍경의 묘사’에 개입되어 있는 현실과 내면의식의 역학 관계를 규명하는 것은 그 시
하고 싶은 말 수원대학교 교양 시적상상력과 현대사회/ 주름과 기억 요약하기 2차 과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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